그녀를 처음 만난건 2010년 늦 여름 어느 파티에서였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싸구려 술 냄새와 뿌연 담배연기로

가득찬 좁아터진 펜웨이의 어느 아파트. 그곳에서 이스라엘 출신 버클리 학생들이

막 공연을 마친 땀범벅의 동기들과 젊은 뮤지션의 당돌한 열정을 미적지근한

선풍기 바람으로 뿜어내던 밤이였다. 거기에 한 동양여자애가 있었다.

때가타 누래진 하얀쇼파에 애들과 부딪겨 앉아 플라스틱 술잔에 노란 맥주를

조금씩 들이키고 있었다. 길게 늘어뜨린 검정 생머리에 히피스런 롱치마.

호기심에 말을 걸어보니 한국인 이였다. 이름은 이수복.

짧은 대화에서 진지하지만 자유롭고 여유로운 모습이 묻어나는 그녀를

보며 지금 이 방에, 이 파티에 아주 잘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로 다시 마주 앉아 얘기 해본적은 없었다. 가끔 학교앞 메스 에비뉴에서

마주치면 눈 인사나 했을뿐. 왠지 괜찮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단지 볼때마다 롱치마를 (또는 히피스런) 입은 모습이 일관성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날 파티에서 내가 느낀것, 어쩌면 나의 편견일뿐인 그 모습이 평소

옷차림과 맞아 떨어져 안심을 하게했다.

얼마후 그녀의 리사이틀 소식을 들었다. 궁금했다. 그녀의 음악 어떨지.

놀랍지 않았다. 내가 느꼈던 그대로 였다. 당돌한 열정과 진지하지만

원하면  언제든 이륙할수 있을만큼 자유로운 여유가 음악에서 스며 나왔다.

새로 발견한 점은 그녀는 할말이 많은 여자 같았고, 호소 짙지만 그 할말을

아직 조금 서툰 퍼포먼스 테크닉때문에 완벽히 뱉어내지 못하는거 같았다.

그리고 하나 더, 그녀의 음악은 순수했다고 느꼈다. 곧이 곧대로 꾹 채워넣는

음정과 구애받지 않는 목소리의 떨림. 슬프면 엄청 슬프게, 기쁘면 날뛰듯 기쁘게,

아프면 찢어지듯 아프게 대놓고 연주하던 피아노와 밴드의 선율.

그녀의 머릿속을 의심할 여지없이 탐구 할수 있게 해주는 그런 음악이였다.

그녀를 블로깅 하기로 마음먹고 페이스북에 친구신청을 했을때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프로필 사진으로 넣은게 눈에 띄었다. 프리다 칼로를 좋아하는구나. 그러고 보니

왠지 그녀의 음악이 꼭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면 닮는다더니. 프리다의 작품중엔 그녀의 유산의 아픔을, 죽은 태아를,

임산부의 배를, 자궁을, 골반을 있는 그대로 그려넣은 페인팅이 있다. 그녀의 슬픔을,

처절한 절실함을 있는 그대로 붓으로 그려 넣은 것이다. 마치 자신의 감정을 맹랑하게

필터없이 그려넣는 어린아이의 그림일기 처럼. ‘동생이 내 과자를 뺏어먹어서 슬펐음’

이라는 제목으로 과자봉지와 코흘리는 동생얼굴, 그리고 처철히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일기장에 생생하게 그려 넣은것 처럼 이수복의 음악도 그렇다. 있는 그대로

아픔 과 상실, 사랑, 고통, 행복, 절망, 희망, 집착, 그녀의 마음을 또박또박

고스란히 음악으로 옮겨놓았다. 이수복, 그녀가 앞으로도 이런 음악을 쭈욱

유지해 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중엔 프리다 칼로 처럼 자신의 심장의 노래를

내뱉어야 하는 말들을 예술로 옮겨 놓았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녀와의 짧은 인터뷰를 소개한다.

1. 전공은?
– CWP (contemporary writing and production)
2. 악기?
– 피아노와 보컬을 더블로 하고 있어요.
3. 버클리에 오게 된 동기
-공과대학을 다니고 있던 저에게 뮤지션이란 언제나 이루어지지 못할 꿈이었습니다.
대학시절 아마추어 락 밴드, 동아리 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3학년 즈음에 우연히
자스라는 학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을 다니면서 음악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연습하고, 또 음악을 하는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도 더 배우면 이렇게
뮤지션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어요. 휴학하고 자스를 졸업한
후에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남은 1년을 마치고 준비해서 버클리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버클리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다른 학교들에 비해 장르면에서
다양하다는 점, 그리고 꼭 연주 뿐만 아니라 다른 방면으로도 많은 프로그램이
있다는 점 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공을 바꾸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여러가지를 경헙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면에서 상당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4. 좋아하는 뮤지션
– 좋아하는 뮤지션… 을 꼽자면 사실 이곳에 다 적지 못할만큼 많겠죠.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는 취향도 많이 변한것도 사실이구요. 그렇지만 변함없이
좋아하는 뮤지션만 몇 꼽아볼께요. Stevie wonder , Joni Mitchell ,
Chet baker , sting , Charlie Haden .. 여기까지만 할께요 :)
5.버클리 라이프
버클리 생활은.. 참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 그 두가지가 너무 극적이라 뭐라고
한마디로 표현을 못하겠네요. 우리나라와 서양식 교육의 다른점이기도 하겠지만,
버클리는 정말 정해진 틀이 없이 알아서 자신에게 맞는것을 배워가야하는
학교인 것 같아요. 물론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가 알아야
한 다는 점에서는 일리가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가서 물어봐야 하는지 조차도
혼란스럽고 내가 제대로 무언가 배우고있긴 한 것인가, 정말 난감했어요.
그런데 선배들도 보고 주위 친구들도 잘 살펴보니 다 자신에게 맞는 길을
잘 찾아 가더라구요. 다들 저처럼 이런 혼란을 겪은 후에 배웠으리라 생각됩니다.
친한 선생님도 생기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그렇게 이겨나가고 있습니다. 버클리에 와서 가장 재밌고 또 버클리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점은 개인적으로 버클리의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는 분야 전공부터 시작해서, 사람들 까지 정말 다양해요. 버클리에는
정말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로 이루어 져 있어서, 외국인인 것이
전혀 어색하지도 않은 학교 이거든요. 각국에서 온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그렇게 흔치는 않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고 같이
연주하고,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버클리 생활의 큰 즐거움 입니다.
6. 앞으로의 비젼.
앞으로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하하.. 모든 사람들이
알고싶어하는 대답이 아닐 수 없겠네요. 저의 가장 오랜 꿈은
싱어송 라이터 입니다. 버클리에 와서도 전혀 변함이 없는 저의
가장 큰 목표에요. 음악을 공부하는 이유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더 정교하게, 좀더 가깝게 표현하기 위해서 이구요. 버클리에 와서
피아노 연주, 보컬 테크닉, 작곡, 화성학, 프로듀싱, 편곡 등등 여러가지
분야를 조금 씩 배우고 있어요. 배우면 배울 수록 내가 하나도
아는것이 없구나 라는것을 더 빨리 배우고 있지만 말입니다. 하하
이런것들을 배워서 ‘ 제가 하고싶은 음악 ‘ 이라는 아주 추상적인
모습의 꿈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은게 저의 목표 입니다.
7. 하고 싶은 말..
음악인의 길은 참 어렵고 험하고, 막막한 길 인 것 같아요.
적어도 저에게는 정말 그래요. 그렇지만 저는 음악을 하겠다고
선택한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럴 수 밖에 없어서 이렇게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음악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후회도 없고요. 앞으로도 계속 이런 열정과 희망을 갖고 음악 하고싶습니다.